드디어 ‘힘내’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았다

드디어 ‘힘내’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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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힘내’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았다

“힘내”라는 말만큼 힘이 나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힘내”라는 말만큼 힘이 나지 않는 말이 또 있을까, 싶으면서도 달리 대체할 수 있는 언어가 없어 다시 힘내라는 말을 기어코 입에 올리는 기분이란. 마치 주관식 시험 문제를 풀 때 오답인 줄 빤히 알면서 차마 빈칸으로 놔둘 수가 없기에 그 ‘유일한 오답’을 꾸역거리며 적는 느낌이랄까.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다시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게 되레 미안해져 한날은 친구와 함께 대체어를 골똘히 생각해보았으나, 결론은 “글쎄, 모르겠다.”였다.

그렇게 마음 한켠 자리 잡고 있던 이 무용한 표현에 대한 고민도 슬슬 잊어갈 무렵··· 물음표를 남기고 끝난 친구와의 논의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당시 나는 하숙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몹시 울적해진 상태였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일어났다 앉았다, 갈팡질팡하기를 수십 번. 하숙집 식탁 의자에 앉아 가슴께로 그러모은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 있자니, 외면하고 싶었던 직감이 기어코 뒤통수를 후려쳤다. ‘당신은 오늘 밤 침대 위에서 대환장 눈물 파티쇼를 벌이게 될 것입니다.’ 그 직감의 이름은 ‘타율 100%’였다. 아, 망했다. 낮에 귀로 담았던 말과 입 밖으로 빠져나간 말, 그리고 마음에 남아 응어리가 되어버린 말들까지. 나는 오늘 밤 그 무수한 말들 사이를 헤집으며 길고도 어지러운 시간을 보낼 게 분명했다.

“언니, 나는 오늘밤 언니가 진짜 푸욱 잘 잤으면 좋겠어.”

“···어?”

그때였다. 나의 심상찮은 행태를 가만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하숙집 메이트가 내 앞으로 걸어와 입을 뗀 건. 난데없이 불쑥 건네진 말에 나는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벙찔 수밖에 없었다. 얘··· 혹시 내가 오늘 낮에 누구랑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 건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저런 말을···. 대답 대신 애꿎은 눈동자만 도록거리고 있는 내게, 동생은 이번엔 더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언니, 오늘밤은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무 꿈도 안 꾸고, 뒤척이지도 않고 중간에 깨는 일도 없이 정말 푸우우욱 자길 바라.”

그리고선 자기 손을 가슴팍에 착 올려놓고 “방금 내 덕담을 언니에게 준 거야.” 덧붙였다.

순간 연분홍빛 강풍이 내게 몰아쳤다. 오늘 밤 내가 그 어떤 생각도, 감정도, 심지어 작은 뒤척임도 침범할 수 없는 숙면을 취하길 바란다니. 어쩜 그리도 무해하고 다정한 말이 있을 수 있을까. 당신의 밤이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그것이 더없이 절묘하고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인 중에 마음 편히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
.
상황과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 어딘가에 갇힌 듯한 긴긴 밤을 보내겠지.

그런 사람들에게 ‘밤의 안녕’을 빌어준다는 건, 그 짐을 대신 져줄 순 없지만 적어도 당신이 잠자리에서만큼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오롯이 스스로를 재충전할 수 있는 밤을 누리기를, 편안한 잠 속에서 무력하고 고단했던 심신이 회복되기를, 그리하여 당신이 평소보다 조금은 더 가벼운 아침을 맞을 수 있길 바란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 날 동생이 내게 준 덕담은 그런 진심이 아니었을까.

정답은 아닐지언정 나름의 답을 찾게 되었으니, 이제껏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빈칸들을 메우고 싶다. 일주일째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해서 이제는 잠도 오지 않는다는 J에게, 최근 코로나에 걸리는 끔찍한 악몽을 꿨다는 S에게, 만성무기력증이 심해져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생각하고 있다는 친구에게,

나는 오늘밤 네가 정말로 푹 잤으면 좋겠다고.

한 자락의 생각도 뒤척거림도 없는, 깊고 안락한 밤을 보내길 바란다고.

당신의 밤이 부디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그런 덕담을, 진심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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