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고백
이해인,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김용택, 당신의 꽃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
이 세상 처음으로
한 송이 꽃입니다
이승범, 샘
영암지서 관사 양철 지붕 아래
검은 동굴 같은 샘 하나 있습니다
어쩌다 찔레꽃잎 하나 떨어뜨리면
잔잔한 물무늬가 꽃속보다 깊고
검은 하늘 찰랑거리며
흰 별로 뜹니다
내 안에 그대가 꽃잎으로 내려
잔잔한 무늬 하나 그을 때까지
참 맑은 샘물로
가슴 흐리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이생진, 고백
이젠 잊읍시다
당신은 당신을 잊고
나는 나를 잊읍시다
당신은 내게 너무 많아서 탈
당신은 당신을 적게 하고
나는 나를 적게 합시다
당신은 너무 내게로 와서 탈
내가 너무 당신에게로 가서 탈
나는 나를 잊고
당신은 당신을 잊읍시다
김혜숙, 숨은 꽃
제일 처음 발견한 자에게만
하나의 커다란 놀라움이 되고 싶어
나는 항상 숨어 사는 꽃이어요
가까이 다가와
허리 굽혀 들여다보는 자에게만
흐뭇한 위안이 되고자
나는 언제나 숨죽이고 있는 향기여요
애써 찾는 자에게만
그 눈에 뜨이고 싶은
나는 제일로 키 작은 꽃이어요
아주 미미한 죄끄만 꽃이어요
그러나 나는 또
늘 눈뜨고 있는 꽃이어요
아, 나는
당신에게서만 이름을 지어 받고 싶은
그래서
아직은
이름도 갖지 못한 꽃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