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명균 칼럼] 어머니 같은 호수 타우포

[나명균 칼럼] 어머니 같은 호수 타우포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1 조회 1239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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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그리고 사람들(2) Waikato River


 


타우포라는 호수 이름은 탐험가 티아(Tia)가 발견해,
그 이름을 딴 타우포 누이 아 티아(티아의 망토)였으나
그냥 쉽게 축약해서 타우포라고 부른다.
타우포호수를 하늘에서 보면, 얼핏 마오리 망토 모양이다.
 

묻고 싶다.

“그 무슨 거룩한 분노였기에

그 어떤 마음의 답답함이 있었기에

그렇게 크고 거대한 폭발이 있었는지?”


어머니와 같은 호수

벌써 고인이 되신 모친과 장모, 두 분은 유난히도 닮은 것이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어려운 때를 사셨던 두 분, 무던히도 고생이 많으셨지.

호수는 그 분노와 답답함을 세상이 놀랄 만큼 크게 폭발이라도 해서 이렇게 시원해졌지만, 두 분은 못내 그 마음을 한 번도 품어내지 못하시고 가셨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 평안함은 그 얼마나 좋으시겠는가!


내려놓음의 호수

‘뉴질랜드 북섬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타우포호수(Lake Taupo)는 둘레만도 190km에 이른다. 이 거대한 호수는 화산 폭발로 생긴 칼데라 호수다. 타우포호수는 칼데라 호수로는 이 지구상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크다. 칼데라 호수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화구가 함몰되어 생긴 것이다.


원 트리 힐(One Tree Hill), 마운트 이든(Mt. Eden) 같은 많은 분화구와는 다르다. 오클랜드의 분화구들은 화산 폭발과 함께 화구가 매립되어 생긴 것이다.

타우포호수는 그런 거대한 화산 폭발이 여러 번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가장 최근의 폭발은 A.D 180년에 있었다. 그 폭발로 생긴 붉은 연기는 5천 미터 상공에까지 이르러, 로마나 중국에서도 붉은 노을이 관측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 폭발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름해 볼 수 있다.


타우포호수! 그 위대한 폭발이 있은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분노와 아픔을 다 가라앉히고 수많은 아픔과 고통, 분노를 내려놓고 이제는 이리도 맑고 많은 물이 모여졌다.


포용의 호수

타우포호수로 유입되는 물줄기는 사방팔방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수십을 넘는다. 어느 학자는 타우포호수는 360여 개의 지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지천은 겨우 몇백 미터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비가 오지 않는 때에는 건천이어서 호숫물을 채우는 일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또 어떤 물줄기는 강(river)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통가리로강이 그렇고, 타우랑가 타우포강과 히네마이아이아강(Hinemaiaia river)도 그렇다.


이렇게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타우포 호숫물을 가득 채운다. 험한 설산에서 녹은 물이 거친 경사면을 작은 돌들을 굴려 내리며 흘러온 물도 있고, 어디서 작게 솟아난 샘물들도 있을 것이며, 또 유유자적 심심산곡을 외롭게 돌아온 물줄기도 있을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든지 상관하지 않고 모두를 품어주는 그런 포용력이 오늘 이 타우포호수를 있게 한다.


눈물의 호수

타우포라는 호수 이름은 탐험가 티아(Tia)가 발견해, 그 이름을 딴 타우포 누이 아 티아(Taupō nui a Tia, The great cloak of Tia, 티아의 망토)였으나 그냥 쉽게 축약해서 타우포라고 부른다.


타우포호수를 하늘에서 보면, 얼핏 마오리 망토 모양이다. 처음 타우포 호숫가에 갔을 때 그 많은 물, 그 맑은 물을 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몇 해가 흐른 어느 날,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참으로 능청스럽게 “타우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인의 눈물’이라고 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돌아오는 말.

“혹시 타우포에서 그날 저를 보셨어요? 저 정말 너무 힘들고 지친 마음으로 차를 몰아 타우포 호숫가에서 펑펑 울었었거든요!”

세상에 이런 일이, 고단한 이민 생활 속에서 남몰래 혼자 타우포 호숫가에 가서 흘린 눈물들이 모인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을 뿐인데.

 

이민 생활 중에 많은 이들의 고단한 마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났었다. 정착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부부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타우포호수를 찾았다가 사나이가 흘리는 굵은 눈물도 보았고, 사업 문제로 고생하는 이들의 눈물과 청운의 꿈을 펼치고자 고군분투하던 어느 청년의 눈물도 보았다. 어쩌면 내가 속으로 쏟아낸 눈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이민자뿐이랴. 700여 년 전, 응아티 투화레토아(Ngati Tuwharetoa) 마오리 부족이 타우포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된 어려운 시기였다.


타우포호수 인근은 너무나도 척박해서 농사짓기가 어려웠고 호수에도 생명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타우포호수와 관련해 자주 묻는 게 뉴질랜드에 그 흔한 장어가 타우포에 있느냐고 할 정도다.


오늘날 많은 그 송어도 1860년대에 이르러서야 유럽인들이 뉴질랜드 호수와 강에 방류하면서 서식하게 된 것이다. 마오리들은 모진 환경 가운데서도 투랑이(Turangi) 인근 푸카와(Pukawa) 등지에 그나마 비옥한 땅을 찾아 파(Pa, 요새)를 짓고 살아남았다.


참회의 눈물

또 하나의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라고 할까 싶다. 투랑이 인근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교도소가 있다. 이제는 이름도 잃어버린 로토루아의 한 마오리 아주머니가 전해준 편지 한 장을 들고 처음 투랑이 못미처 있는 하우투교도소(Hautu prison)를 찾아갔다. 그런데 15km 남쪽의 랑기포(Rangipo) 쪽에 있는 통가리로교도소로 가야 한다고 했다. 교도소의 크기가 자그마치 8,500여 헥타르란다.


교도소 안에는 수천 헥타르의 숲과 농장도 있다. 통가리로강과 와이오타카강, 두 강이 교도소 안을 흐를 정도다. 재소자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며 농장 일도 하는 가운데 참회의 나날을 지낸다. 그들이 흘린 참회의 눈물, 혹은 억울함의 눈물이 얼마나 많기에 강줄기가 두 개를 이루는가 싶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가 보다. 아내가 곁에서 하는 말.

“늙고 아프다고 하시는 어머니, 아니 그런 엄마라도 계셨으면 좋겠다.”

꽤나 엄마 생각이 나는가 보다. 어머니와 같은 타우포호수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강으로서 그 역사를 시작한다.


 


나명균_조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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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1
김성웅 2020.05.18 17:38  
타우포 호수를 지나며  낮게 피어 오른 뭉게구름을 바랍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던 수채화 그림에 탄성을 지르던 때가 그립네요

애드 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