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딸의 기하학

[문학의 숲] 딸의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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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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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기하학

 

–정철용 (필명)–

스콜라문학회 회원


1. 원(圓)과 각(角)


학교에서 기하학을 배우기 시작한

딸아이가 묻는다.

아빠는 무슨 도형이 제일 좋아?

음, 아빠는 동그란 원이 좋단다.

나의 대답에 딸아이는

나도! 라고 말하며 활짝 웃지만

그 웃음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아프게 각이 진다.


딸아이의 웃음 속에 굴러가는 동그란 원은

지금은 저리도 아름답지만

딸아이가 배워야 할 삶의 기하학에는

얼마나 많은 각들이 숨겨져 있을 것인가.

그 각들로부터 받을 상처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삼각형에서 사각형으로

사각형에서 오각형으로

오각형에서 육각형으로

네가 세상과 맞서는 각(角)들은

점점 많아질 거란다, 얘야.


각들이 많아질수록

처음의 예각(銳角)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마침내 아빠의 원처럼

각이 완전히 사라지겠지만

그 때의 원은 이미

기하학을 배우기 시작하던

네 어린 시절의 원과는 다르단다.


딱지 앉은 상처들이 가득한

내 오래된 원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나는 속으로만 딸아이에게 말을 건넬 뿐,

내가 개입할 수 없는 딸의 기하학은

동그란 원을 앞세우고

스스로의 힘으로

각이 진 세상을 굴러가야 한다.




2. 내부와 외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딸아이는 방문을 자주 걸어 잠근다.

사각형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어도

혼자 있고 싶다는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나는 듣는다.


나도 한때는

세상은 도형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지금 딸아이는

사각형의 방 안에서

도형의 내부를 열심히 색칠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외부로 색이 삐져 나갈까 염려하여

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진짜 세상은 도형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는 것을

도형의 내부와 외부는

문을 걸어 잠가도 소통된다는 것을

너도 알아차리게 되겠지.


딸의 기하학이 그어 놓은

선명한 폐곡선 밖에서

딸아이가 색칠해 놓은 도형의 내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오후,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폐곡선이

희미한 자국으로만 남아 있는

내 도형의 내부는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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