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이오덕 선생을 생각하며

[문학의 숲] 이오덕 선생을 생각하며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899 추천 0


문학의 숲(27)

 

00fbc3f7f7219e1533c280d3dc74f56e_1644465665_1113.jpg
 


–시인과나(필명)–

스콜라문학회 회원


‘환한 미소’, ‘환한 웃음’.


어떤 게 더 마음에 와 닿나요? 저는 ‘환한 웃음’이 훨씬 좋습니다. ‘웃음’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정말로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미심쩍으시면 여러분들도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반면에 ‘미소’는 얼굴에 칼을 댄(양악 수술 같은 것) 여자를 보듯 자연스럽게 와 닿지 않습니다. 억지로 웃음을 짜내야 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제가 이오덕 선생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말로 기억됩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야?’하는 분이 있을지도 몰라 간단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43년간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교장을 지냈으나 전두환 군사정권의 교육행정에 대한 반감으로 스스로 퇴직하였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한국일보에 수필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83년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퇴임 후에는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다. 우리말에 사용되던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의 잔재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우리문장 바로쓰기』와『우리글 바로쓰기』를 집필했다. <‘다음 백과’에서>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그해 5월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습니다. 국내 신문 처음으로 가로 판, 순 한글로 만들었습니다. ‘가로 판’도 놀라운 일인데 거기다 ‘순 한글’로만 편집이 되어 있어, 신문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평범한 독자였던 저 역시 그렇게 느꼈고요.


그로부터 서른 해가 지난 오늘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이나 잡지 가운데 가로 판에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쓰는 매체는 거의 없습니다. 조선일보만 한문의 중요성을 강조해 한문을 함께 쓸 뿐입니다. 


한겨레신문이 시대를 앞서간 점도 있지만, 앞날의 독자들은 결국 한문보다는 한글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승리했다’, ‘패배했다’, ‘하계 올림픽’, ‘동계 올림픽’.


이 단어를 ‘이겼다’, ‘졌다’, ‘여름 올림픽’, ‘겨울 올림픽’ 이렇게 바꿔쓰면 안 될까요? 이런 보기(예)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고도 수십 개, 수백 개를 들 수 있습니다. 굳이 제가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한국의 예능 방송을 한 시간 정도 주의 깊게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한 시간 동안 외국어(영어)가 백 번 넘게 나왔다고 합니다. 예능 프로뿐만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골라 써야 할 뉴스 시간에도 버젓이 영어가 나옵니다. 한국말을 가볍게 보는 방송국의 책임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보통 사람의 인식이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전 문학 공부를 할 때 우리말, 우리글을 잘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박경리가 쓴『토지』에 나오는 우리말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토지』가 제 교과서였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정말 많았습니다. 대학 노트 한 권에 그 단어를 다 옮겼습니다.


그로부터 서른 해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 많은 것이 제 글 몸 곳곳에 숨어 있기는 하겠지만 저 역시 영어와 중국어, 일본식 표현에 중독이 되어 있음을 고백합니다. 


알면서도 정작 글을 쓸 때는 잘 안 됩니다. ‘다들 그렇게 쓰는 데 뭐’하며 위안을 합니다. 명색이 글을 쓴다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짓입니다.


이오덕 선생은 그런 제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쓰지 마세요. 우리말을 살려 주세요’하고 호소합니다. 제 빈약한 서재에는 그의 책,『우리글 바로쓰기』(모두 2권)가 꽂혀 있습니다. 저는 틈틈이 책을 꺼내 읽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우리글 사랑에 고개가 숙어집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가 중국식 표현, 일본식 표현을 자주 쓰는 까닭은 ‘식자연’(識者然, 이 표현도 이오덕 선생이 안 좋아하실 겁니다)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한문을 자주 쓰면 좀 배운 사람 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굳이 우리말 우리글이 있으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식 표현은 일제의 지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나도 모르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그게 생각만큼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영어입니다. 국제 언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방송과 신문, 잡지 같은 모든 매체가 온통 영어 일색입니다. 저는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이라 웬만한 것은 거의 다 알아듣지만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영어를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란 말이냐?’


한국의 아파트는 거의 ‘저택’ 혹은 ‘성’(城)이며 귀족들만이 사는 곳인 것 같습니다. ‘맨션’(mansion), ‘캐슬’(castle)에 ‘로열’(royal)이란 단어가 한 번의 고민도 없이 결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보면 단어 뜻의 폄훼에 놀랄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공부 많이 한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가 못 찾아오게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어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될 수 있으면’(‘가급적’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이오덕 선생에게 꾸중을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초리를 맞아도 열 대는 넘게 맞아야 할 만큼 허물이 눈에 보입니다. 그만큼 제 글이 오염되어 있다는 뜻일 겁니다.


여러분도 제 글을 꼼꼼히 읽으면 중국말을 우리말로 고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보기로(‘예를 들면’이 아닙니다) ‘노출’은 ‘드러내’로, ‘국가’는 ‘나라’로, ‘폄훼’는 ‘헐뜯음’으로 고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시험해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이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좋은 글, 멋진 글은 멋진 수사에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식자연’하는 글자세도 물론 아니고요. 저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논문이나 전공 책은 따로고요. 특히 글을 전문으로 쓰는 문학가나 교사, 기자 같은 사람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분들이 결국 ‘문화의 꽃’이라고 하는 인쇄물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어쩌면 거북할 수 있는, 조금은 글을 쓰는 데 겁을 먹게 하는 이런 글을 써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려 이 글은 저를 향한 글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우리글 우리말을 골라 써야지’ 하는 다짐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가 아닙니다.) 

 편히(‘안녕히’가 아닙니다) 계세요. 

 


 

00fbc3f7f7219e1533c280d3dc74f56e_1644465738_3418.jpg 

뉴질랜드스콜라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문학회에 관심 있는 분들은 http://cafe.daum.net/scholarliterature 혹은 021 272 4228로 문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 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0

애드 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