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고전

[문학의 숲]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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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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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필명)-

스콜라문학회 회원

 


『안나 카레니나』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세월과 세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이며,

독자가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고전(古典)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색되거나 모양이 변하지 않는 명품, 또는 십 대 청소년부터 팔십 대 노인들까지 널리 좋아하는 명곡에나 어울리는 개념이 아닐까.


문학에서 ‘고전’이라는 용어는 ‘오래된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세월과 세대를 뛰어넘어 꾸준히 읽히는 작품’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고전이라고 알려진 작품들을 대하면서 먼저 느끼는 부담은 방대한 분량과 무겁고 빡빡한 문장들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끝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고전이라고 할 때, 보나마나 골치 아플 것이라는 선입견에 작품을 읽을 엄두가 날아가 버리기 십상이다.


특히 소설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안나 카레니나』(민음사) 역시 세 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권은 거의 육백여 쪽에 가까운, 그러니까 천칠백여 쪽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그런데도『안나 카레니나』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세월과 세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이며, 독자가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안나 카레니나는 과연 어떤 작품이며, 어떤 이야기일까.


여느 독서 모임에서 그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 그 자체보다는 작가인 톨스토이의 출신과 일화들로 채워지곤 한다. 톨스토이라는 이름만으로 작품보다 훨씬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없다. 감히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할 거인(巨人)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에 대해서 마저 입을 다물고 싶지는 않다.


문학작품, 그중에서도 소설은 독자의 존재를 작품의 바닥에 깔고 쓰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인물과 배경을 구상하고 플롯과 구성을 조직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제목을 정하여 지면에 발표한다는 일련의 행위와 절차는 모두 독자를 향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외출을 하려는 것일까. 마차에 탄 그녀는 여전히 검은색 드레스 차림이었고, 부풀부풀한 꽃으로 장식한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가벼운 홍조를 띤 통통한 뺨과 단정하게 다문 입술, 그리고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오만한 나무람이 서려 있었다. 안나였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고상하거나 우아하지 않은, 안나라는 귀부인이 저지른 불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노골적인 성행위의 묘사도 없으면서 모든 소설에 모범이 될 만한 장점들 즉 수려한 문장과 서사, 인물의 성격, 배경과 구성의 짜임 등을 작품 전체에 넉넉하게 품고 있다.


물론 작품의 삼대 명장면으로 일컬어지는 브론스키 백작의 경마대회, 콘스탄친 레빈의 풀베기 그리고 레빈의 형인 니콜라이의 죽음이라는 튼튼한 기둥이 전체를 버티어 줌으로써 작품의 품격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거론될 문제이다.


작품은 안나가 오빠의 가정파탄을 막기 위해서 모스크바로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올케의 심정을 슬기롭게 어루만져 이혼을 막는다. 무도회에 참석해서 젊은 귀족을 만나고, 유혹을 받는다.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안나는 생각에 빠진다.


그 부분을 본문에서 발췌해 요약하면 이러하다.


“안나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했지만 책을 읽는 행위,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반영을 좇는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그마한 손으로 매끄러운 페이퍼 나이프를 만지작거리며 책을 읽으려 애썼다.”


“그녀는 유리창 표면을 따라 페이퍼 나이프를 움직였다. 불현듯 원인 모를 기쁨에 사로잡혀 자칫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어둠 속의 모든 형상과 소리가 그녀의 마음에 또렷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고 느꼈다. 기차가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아니면 멈췄는지 그런 것에 대한 의혹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귀족이면서 고관의 아내로서 평탄하게 살아가던 안나가 처음으로 젊은 남자에게서 유혹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흔들린 마음을 시작으로 그녀는 가정과 아들을 포기하는 사랑의 격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이 단락에서 귀부인의 수년간 쌓여 온 권태가 열정적인 사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문장에도 상대방의 용모라거나 신분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사랑이나 애정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단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정황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있을 뿐이다.


이렇듯 조심스러우면서 진지한 서사의 흐름을 어찌 따라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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