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내 마음의 바닥

[문학의 숲] 내 마음의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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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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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바닥


–정철용 (필명)-

스콜라문학회 회원


구름처럼 왔다가

빗방울처럼 가는 시월


피었다가 저절로 지는

남반구의 봄꽃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떨구는

북반구의 낙엽을


쌀 씻고 난 뜨물을

안뜰 꽃밭에 뿌려주다가


젖은 두 손바닥을 벌려

가만히 받네


두 손바닥 아래

내 마음의 바닥엔


미처 받아내지 못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한번 지나간 시월을

다음 해에 또 불러내고


그 사이에 내 두 손바닥엔

못 보던 손금 몇 줄 더 생겨나


내 마음의 바닥으로

지름길을 내기도 하네




<시작 노트>

문태준 시인은 말했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고. 오래 전 그 바닥으로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지금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을 땅바닥이 받아주고 있다고. 그렇게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가 가을에는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고. 그래서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고.

그러나 문태준 시인의 바닥은 결국은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바닥일 게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까. 공중에 무수히 생겨나는 낙엽지는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10월의 어느 날, 그의 시를 읽고 나도 내 마음 속의 바닥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여기 뉴질랜드는 남반구여서 봄꽃이 피어나고 있건만 아직도 북반구의 계절 감각에 익숙한 내게는 10월은 가을이어서, 그리운 이들이 내 마음에 떨군 낙엽들이 가만히 느껴졌다. 나는 안뜰에 피어난 봄꽃에 물을 주다가 잠시 멈춰 서서 그 낙엽들을 내 두 손바닥으로 받았다.

미처 받아내지 못한 낙엽들은 내 두 손바닥 아래 내 마음의 바닥에 쌓여 이듬 해 4월쯤, 한국에서 봄꽃이 한창일 무렵, 이곳에서는 가을을 불러내리라. 그 사이에 몇 줄 더 생겨난 내 손바닥 손금만큼의 그리움이 내 마음 바닥에 새로 길을 내리라. 1만 킬로미터 떨어진 북반구의 고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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