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네가 애비어미를 버리드라도”

[문학의 숲] “네가 애비어미를 버리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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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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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

스콜라문학회 회원



“무엇이든 잘 먹고 몸을 보전하라.

그리고 막상 부모를 버리는 결정을 하드라도

건강하게 살다가 큰 일 많이 하고 명을 다해야 한다.

네가 애비어미를 버리드라도 부모는 너 뒤를 보살피다가 끝을 맺게 될 것이다.

1991년 4월 8일 밤 아빠 씀.”

 


엡솜(Epsom) 도서관에서 책 십여 권을 샀다. 수명을 다해 버림받은 수백여 권 책 사이로 한국 책이 눈에 뜨였다. 그 가운데 한 권이 유독 내 눈을 끌었다.『아버지의 라디오.』


표지에는 목침 같이 생긴 옛날 라디오가 엉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버지와 딸의 사진이 뒷 배경을 차지했다. 서른 해 전쯤 찍은 사진이었다. 작은 제목은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든 엔지니어 이야기’.


오래전 이 책을 사놓고도 한 동안 곁에 두지 않았다. 느낌상 좋아 보이는 책은 좀 아껴 읽는 내 독서습관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젯밤 책을 손에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몇 번이나 책을 들었다 놓았다 했는지 모른다. 우리 아버지 세대인 한 엔지니어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격동의 근현대사를 간추려 만날 수 있었다.


지은이는 김해수, 엮은이는 김진주. 아버지 김해수가 쓴 원고를 딸 김진주가 정리했다. 김해수는 192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방과 한국전쟁 공간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김해수 역시 마수처럼 할퀴고 간 이념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일본에서 배워온 전자 기술을 활용해 그는 라디오 사업에 손을 댄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밀수입된 라디오를 고쳐주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눈썰미 있고, 실력 좋은 그는 곧 라디오 분야에서 한국 최고 기술자 자리에 오른다.


‘럭키 치약’으로 떼돈을 벌던 구인회 회장이 10년 뒤를 내다보며 만든 회사가 금성사(Gold Star, 오늘의 LG 전신)다. 금성사 창립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김해수. 금성사 로고를 만든 사람이다.


김해수는 이때부터 독자적으로 라디오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한다. 1년 간의 우여곡절 끝에 김해수를 중심으로 한 라디오 개발팀은 첫 작품을 세상에 내 놓는다. 


‘금성 A-501’, 첫 생산량은 87대였고 가격은 2만 환. 당시 중견 간부급 대접을 받았던 김해수 월급이 6천 환이었음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1959년 11월 15일,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우리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선보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았다. 미제와 일제에 밀려 한 구석에 놓이는 신세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희 장군이 공장을 찾았다. 박정희는 그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다. 김해수는 “밀수품을 시장에서 없애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지나 저자 거리에서 라디오 밀수품이 자취를 감췄다. 5.16군사 쿠데타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알려주어야만 했던 박정희가 도와줘 이뤄졌다. 


아울러 국가 차원에서 농촌 마을에 라디오 한 대 보내기 운동까지 펼쳐 김해수가 만든 라디오는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


이 책은 김해수가 엔지니어로 한 평생 걸어온 길을 담고 있다. 전형적인 자서전 같은 책이다. 아버지와 딸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에 소중한 자료가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든 생각.


이 책이 독자들 눈을 끌기 힘들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 역사를 귀히 여기지 않는 오늘의 독자들 때문이다. 첫 라디오를 만든 사람이 있어 대한민국이 오늘의 IT강국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책의 엮은이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 김해수의 딸, 김진주는 1955년에 태어나 이화여대 약학과를 마쳤다. 어렸을 때부터 정의감이 강했던 그는 일찌감치 노동운동에 몸을 담는다. 그 때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다. 불 보듯 뻔한 산업화 시대 아버지와 민주화 시대 딸의 갈등 속에서 김진주는 ‘도발이’ 생활과 옥살이를 한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부분.


“무엇이든 잘 먹고 몸을 보전하라. 그리고 막상 부모를 버리는 결정을 하드라도 건강하게 살다가 큰 일 많이 하고 명을 다해야 한다. 네가 애비어미를 버리드라도 부모는 너 뒤를 보살피다가 끝을 맺게 될 것이다. 1991년 4월 8일 밤 아빠 씀.”


나는 이 대목에서 숨이 멎었다. 아버지도 아닌 ‘아빠’에서, 아침이나 낯도 아닌 ‘밤’이라는 글자에서 한동안 책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김해수는 생을 마치기 얼마 전 아내에게 편지를 한통 남겼다.


“여보. 나를 위하거든 이대로 조용하게 보내주시오. 고생만 시키고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미안하오. 오로지 한 사람의 애인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는 2005년 8월 21일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독후감을 엡솜 도서관에서 쓰고 있다. 글을 쓰다가 잠시 쉴 겸 한국책이 있는 선반을 둘러봤다. 그 사이에서 빨간색 커버의 굵직한 책 한 권이 내 눈에 띄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박노해 시집)


김해수의 딸 김진주의 남편, 박노해의 짧은 시 한 편으로 이 글을 맺는다.


아니다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고독하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김해수 지음/ 김진주 엮음/ 느린걸음 펴냄/ 237쪽>

 


*국산 라디오 1호 금성 A-501는 현재 3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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