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테 아로하 가는 길
문학의 숲(13)
테 아로하 가는 길
–정철용 (필명)-
스콜라문학회 회원
삶은 미끈거린다.
아내와 함께 테 아로하 가는 길,
비가 내렸는지 도로가 젖어 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인다.
바싹 뒤따라오던 차 한 대,
참기 어려웠던지
중앙선을 넘어 내 차를 앞지른다.
돌이켜보면 내 삶도
앞지르기 하는 저 승용차처럼
가속페달 밟고 내달려온 건 아니었는지.
아내가 음악의 볼륨을 줄이는 사이
또 한 대가 추월해 질주한다.
무모한 청춘의 앞지르기에
길은 말없이 굴복하는 것 같아도
어디쯤에서 질주하는 삶을 기어코 받아낸다.
그 자리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생명 없는 꽃들이 걸려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한 속도를 넘어섰는지
내 손을 잡는 아내의 손이 젖어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오래된 연인들처럼
나는 속도를 늦춘다.
속도를 늦추면
우리 삶도 그렇게 늦추어질 수 있을까.
휙휙 지나친 우리 사랑의 세부도
좀더 확실하게 볼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워도
소다수 온천물에 몸을 담글 때
서로의 몸을 부축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랑 또한 미끈거리기 때문임을
오래된 연인들은 잘 알고 있다.
테 아로하 가는 길,
내 손을 잡는 아내의 손이 미끈거린다.
사랑은 미끈거린다.
<시작 노트>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 테 아로하 온천으로 향하는 길에서 내 차는 자주 추월당한다. 시속 100km의 표지판보다 늘 10km 정도 느리게 달리는 내 차의 속력을 뒤따르는 차량들은 참지 못한다. 나도 한때는 저들처럼 그렇게 빠른 속도로 삶을 살아왔었지. 추월해가며 경적음을 빵빵 울리며 상향등을 번쩍번쩍거리며.
그러나 뉴질랜드로 이민 와 아내와 함께 ‘사랑’이라는 마을의 온천장을 향하면서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늦춘다. 질주하는 삶에 깃들어 있는 위험한 지점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늦출 것.
드디어 도착한 테 아로하 온천장. 그 미끌미끌한 소다수 온천물에 아내와 함께 벌거벗은 몸을 담그면서도 나는 조심한다. 10년을 넘게 함께 한 사랑에도 복병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아내의 손을 잡을 것. 삶은 미끈거린다. 사랑 역시 미끈거린다. 테 아로하 온천장에서 삶이 숨기고 있는 미끄러움은 사랑이 숨기고 있는 미끄러움과 만난다. 삶의 미끄러움은 속력을 늦추게 하고 사랑의 미끄러움은 손을 잡게 만든다. 그 맞잡은 손의 힘으로 우리는 우리 발에 걸리는 미끄러운 삶의 힘을 넘어선다.
뉴질랜드스콜라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문학회에 관심 있는 분들은 http://cafe.daum.net/scholarliterature 혹은 021 272 4228로 문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 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