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발톱을 깎다가

[문학의 숲] 발톱을 깎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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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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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에 견줘 내 발톱은 아주 더디 자란다. 손톱은 눈에 잘 보이지만 발톱은 발을 바짝 당기지 않으면 보기가 쉽지 않다. 손톱을 네 번 정도 다듬을 때 발톱은 한 번 정도 깎는다. 귀찮기도 하고 잘 안 보이기도 해서 무시하곤 한다.


1984년 11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교육을 받을 때 조교가 물었다.

“발톱을 자주 잘라야 하는 이유가 뭔가?”


다들 머뭇거리고 있는데 한 훈련병이 손을 번쩍 들어 자신 있게 답했다.

“양말 빵구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조교는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 조교는 “너희 부모들이 힘들게 벌어 낸 세금으로 사서 준 양말이다. 국가와 부모를 생각해 아껴 신도록... 블라블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발톱을 깎는 이유는 발가락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양말이 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을.

오래전 간호사 재능기부단과 함께 서해 낙도를 사흘 정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들은 사랑 나눔이 목적, 나는 글쓰기가 목적이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 들어가 주민들을 만났다. 거개가 다 환갑이 훌쩍 넘은 늙은이들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두 가지 병은 다 앓고 있었다. 의료 혜택과는 거리가 먼 곳에 살아서 그랬을 거다. 그 가운데 한 할머니가 사람들이 말하는 게 잘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백의(白衣)의 천사, 간호사가 할머니 귀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할머니 좀 누워 보세요. 제가 고쳐 드릴게요.”


할머니는 간호사 무릎을 베고 누웠다.

이삼 분쯤 지났을까. 할머니 귀에서 염소똥 크기만한 귀지 한 개가 기어 나왔다. 


“할머니! 이제 시원하시죠? 귀지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할머니는 머쓱했는지 아무 말 없이 떠났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 세상에는 그렇게 큰 귀지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1990년 11월 즈음, 나는 아프리카 케냐에 있었다. 그곳을 여행하다가 세계에서 가장 용맹한 부족이라는 마사이부족 마을에 들어갔다. 거기서 선교 봉사단 일행을 만났다. 


의료진도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보름간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교회당도 하나 짓고, 부족 어린이를 찾아다니며 선교 활동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가운데 하나. 


마사이 어린이가 머리에 소똥을 십자가 모양으로 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마사이 부족은 소똥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 


그걸 풀잎에 이겨 집을 짓고, 그걸 말려 불을 피워 밥을 하고, 그걸 정성껏 빚어 생약으로 썼다.

간호사는 웃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소똥 십자가가 너를 낫게 해줄 거야.”


그는 그러면서 과자에다 알약 두세 개를 얹어줬다. 아이는 큰 눈을 껌벅거리며 웃었다. 약보다 과자가 더 맛있게 보였겠지만, 약을 받지 않으면 과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웃으며 손을 내민 것이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아프리카에서 분명히 알았다. 소똥은 분명히 약이 된다는 것을.

오래 전 어머니 집을 찾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발톱 얘기가 나왔다. 


발톱을 깎을 때마다 고생하신다는 것이었다. 곁눈으로 어머니 발톱을 훔쳐봤다. 정말로 이상하게 생겼다. 모난 갈퀴 창처럼 느껴졌다. 


어머니 발톱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태다. 좀 유식하게 말하면 내성발톱. 발톱 자르는 때를 놓치면 엄청 고생하신다고 한다. 나는 반세기 넘게 어머니 주위에 있었지만 어머니에게 그런 ‘사소한’ 고통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어머니가 말했다.

“OO야. 너는 이런 고통 모를 거다.”


나는 정말 그런 고통을 모른다. 내 발톱은 선비 손가락처럼, 피아노 건반처럼 우아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은 미안했다. 어머니의 사소한 고통도 모르면서 무슨 효자 티를 내며 사느냐는 자문이었다. 


어머니 발톱을 내가 과연 잘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답은 ‘불가’. 그래서 든 생각. 어머니가 좀 더 힘들어지면 내성발톱깍이 전문가를 초빙해야겠다는, 좀 그로테스크한 꿈을.


어린 시절 큰 누나가 내 귀지를 파준 기억이 난다. 나랑 여덟 살 차이가 나는 누이는 그런 ‘사소하지만 귀중한’ 일을 잘한다. 한 마디 잔소리도 없이 하는 걸 보면 그걸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작은 굴에서 기암괴석같이 생긴 게 쏙쏙 빠져 나온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져서일 거다.


지금도 그렇다. 누이는 비릿한 생땅콩을 한가득 사서 불에 볶는다. 또 정성을 다해 껍질을 벗긴다. 한두 시간도 안 돼 멋진 상품으로 나온다.


 술집에 내놓으면 과일 안주 못잖은 훌륭한 주전부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색깔도 곱고 맛도 훌륭하다. 누이가 그걸 즐기지 않는다면, 그 귀찮은 일을 그렇게 정성껏 할 리가 없다.


누이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에 열 개 이상 먹으면 건강에 좋대. 소화도 잘되고.”


솔직히 말해 나는 백 개를 넘게 먹는다. 소화가 너무 잘 돼 방귀가 푹푹 나온다. 누이의 사랑이 깊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느낀다. 설령 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 쉰을 훌쩍 넘은 동생에게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할지라도 나는 그게 한없이 즐겁다.


누이가 볶아낸 땅콩은 대한항공 회장 따님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마카데미아 맛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이유는 먹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몇 개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지금 막 새 속담을 만들어 냈다. ‘잘 볶은 땅콩은 열 반찬 부럽지 않다’는.


이 글은 아주 사소한 글이다. 그러면서도 아주 뜻깊은 글이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발톱을 잘 다듬어 가지런하거나, 귀지를 다 털어내 말이 잘 들리거나, 땅콩 몇십 개를 먹어 방귀가 붕붕 나올 정도로 소화가 잘되거나, 그게 사람 사는 데 있어 참 행복이 아닐까 믿어진다.


때가 되면 나는 돈을 줘서라도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을 공개 모집해 보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지를 잘 파는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발톱을 잘 깎는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땅콩을 잘 볶는 사람.


발톱을 깎다가, 땅콩을 먹다가 든 생각이다. 사소하지만 뜻깊은. 여러분들도 진중하게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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