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 아보카도의 전쟁

[문학의 숲] 아보카도의 전쟁

뉴질랜드타임즈 댓글 0 조회 8130 추천 1


문학의 숲(39)
 


아보카도의 전쟁


정철용

스콜라문학회 회원


아내가 장바구니에 담아온
싱그러운 녹색의 아보카도 몇 개
너희는 수류탄처럼 묵직하고 단단하다


속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
우툴두툴 두터운 갑옷으로 무장한 너희는
그러나 무명의 병사들인 모양이다
감추고 있는 게 뭐 있겠느냐는 듯이
다들 못생기고 향기도 없다


무시하고 식탁 위에 놔두었더니
이틀도 안 되어 녹색의 갑옷이 거무튀튀해지고
오월의 투석처럼 단단했던 전의도 풀이 죽어
너희는 이제 물렁물렁한 오합지졸이다


과도를 들이대니 단칼에 갑옷이 벗겨지는데
속살은 뜻밖에도 희고 부드럽고 미끈거린다
그러나 한 조각 입에 넣어 맛을 보니
조금도 달콤하거나 새콤하거나 하다못해 씁쓸하지도 않다
실망스러운 밍밍한 맛이다


그럼 그렇지
생긴 것부터 벌써 비호감이더라구
싱겁게 종전(終戰)을 선언하는 내게
그러나 아보카도의 병사들은 입 앙다문 채
둥글고 커다란 자신의 씨앗을 보여준다


단단하고 견고하다
과도로도 잘라지지 않는다
며칠째 놔두었는데도 조금도 물러지지 않는 아보카도의 씨앗
결사항전이다
마침내 나는 칼을 버린다

6ebd22d29cb079e36b4578790595522f_1584413014_0982.jpg

 



6ebd22d29cb079e36b4578790595522f_1584412788_1649.jpg
뉴질랜드스콜라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문학회에 관심 있는 분들은 http://cafe.daum.net/scholarliterature 혹은 021 272 4228로 문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작권자 © ‘뉴질랜드 정통교민신문’ 뉴질랜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총 0

애드 프라자